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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자녀가 있는데 퇴직 후 주부였던 아내는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집 대출금에 교육비로만 월 300만원이 나가는데 아내의 아르바이트비로는 턱없이 부족해 대출로 살고 있습니다."
2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시 중장년 일자리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김모 씨(50)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연봉 1억원을 받으며 대기업 협력사에서 17년간 근무했던 그는 대기업에 납품하던 기계를 매각하면서 자신을 포함해 제조파트 직원들이 줄줄이 실직했다.
1억3천만원 구직 9개월 차에 접어든 그는 "막내 기준으로 11년 이상 자녀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전 경력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욕심을 버리고 세 자녀를 위해서라도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털어놨다.



이력서 사진을 찍고 있는 시니어 구직자/사진=유지희 기업파산 기자


이날 행사장에는 김 씨처럼 '막막함'을 안고 온 중장년 구직자들로 북적였다. 박람회장 한쪽, 이력서 사진을 찍는 부스에는 구직자들이 단정한 옷매무새를 고치고 긴 줄을 서 있었다. 이 부스에서만 이날 200명 이상이 취업 사진을 촬영했다.
행사장 한켠, 채용공고 게시판 앞에서는 우리은행 기금대출 노트와 볼펜을 든 구직자들이 열심히 채용 정보를 적어 내려갔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행사 이틀 동안(7월 1~2일) 사전 등록자는 2590명, 현장 등록자는 1963명으로, 총 4553명이 박람회를 찾았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이번 박람회는 QR 기반 체크인부터 인공지능(AI) 영상면접, 모바일 헬퍼, 키오 스타크레디트 스크 정보검색 시스템까지 최신 기술을 총동원해 중장년 구직자들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57세면 정년? 77세도 구직 전선…쓴웃음 짓는 한국 중장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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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다녔는데, 말이 60세 정년이지 실제로 채우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4년 전 대기업 은퇴 후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이모 씨(58)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손해평가사 자격증을 땄지만 들인 시간에 비해 수입도, 일자리도 없었다. 과거 내가 어디 다녔는지 다 잊고 새 출발 한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29년째 일하다 명예퇴직한 김모 씨(54)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재수생 자녀가 있어 교육비는 사업하는 아내가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지만 구직 8개월째가 되니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심해진다"며 "정년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년까지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취업 시장에서 나이와 직급이 애매한 중장년은 정말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2019년 시중 4대 은행에서 퇴직한 뒤 부동산·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구직 중이라는 최모 씨(64)는 "대기업이나 금융권은 57세면 정년인데, 그 나이에 퇴직하기엔 너무 젊다. 제한이 너무 많고 청소나 조리사 같은 직종으로 국한돼 있는 현실이 아쉽다"며 "지금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29세 아들과 함께 엄마와 아들이 집에서 나란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팔순을 앞둔 노인도 이곳을 찾았다. 박모 씨(77)는 "현재 나라에서 이어준 식당 보조 일을 9개월째 하고 있는데 그것도 곧 계약이 끝난다"며 "나이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지만, 혹시나 일할 만한 곳이 있을까 해서 나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양질의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사무직 꿈 접는 시니어 구직자들



사진=유지희 기자


올해 박람회에는 12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약 1600개의 채용 기회를 제공했지만, 현장에 게시된 채용공고 중 택시, 운송, 조리, 청소, CS 등 단순직이 과반을 차지했다.
박람회장을 찾은 도봉구 거주 50대 나모 씨는 10년간 운영하던 보습학원을 폐업하고 이곳에 나왔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생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는데, 경제 불황과 저출생을 피부로 느끼면서 그만뒀다"며 "교육 쪽으로 계속 일하고 싶지만, 학원이나 사무직 모두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분위기라 쉽지 않다. 현장에 와보니 채용 분야가 택시, 운송업 등으로 한정적이고,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되는 회사는 채용 인원이 턱없이 적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3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4050 중장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재취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 중장년 구직자들이 희망하는 최소 연봉은 평균 4149만 원으로,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 대비 약 75%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희망하는 재취업 후 근무 연령은 평균 65.6세까지로 조사됐다.
중장년 구직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느끼는 지출 항목으로는 본인 가구 생활비(35.7%)가 가장 많았고, 이어 자녀 사교육비·학자금(17.7%), 병원비·건강 관련 지출(16.9%), 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15.8%), 부모나 배우자 부모를 위한 생활비·의료비 지원(9.5%) 순이었다. 특히 노후 준비에 대해 "부족하다"고 답한 비율은 76.3%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7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없다"…중장년 노후 다큐 다시 화제



출처='EBS 다큐멘터리' 유튜브


중장년 재취업이 어려운 현실은 온라인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1월, EBS 유튜브에는 201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시선 '서러워 말아요, 젊은 그대- 60살에 은퇴하고 내 노후는 완벽할 줄 알았다'가 새롭게 편집돼 올라왔다. 영상은 조회수 60만 회를 기록하며 중장년 노후 현실에 대한 관심을 모았다.
영상에는 아르바이트 구직 중인 전직 대기업 부장 정효선 씨(63)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퇴직 후 6개월 정도 쉰 뒤 1년간 계약직으로 일했으나 이후 계약직 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정 씨는 경복궁 야간 경비원 면접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37명을 뽑는 자리에 52명이 지원한 치열한 상황이었다. 면접장에는 73세 지원자까지 몰렸다.
면접관이 "근무 시작 후 3시간 반 이상 서 있어야 하는데, 다리가 버틸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정 씨와 함께 면접을 보던 한 지원자는 "전혀 문제없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답했다.
정 씨는 인터뷰에서 "퇴직금과 연금, 그리고 조금씩 용돈벌이라도 하면 아내의 수입과 합쳐 충분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세세하게 계산해보지 않았는데 현실에 닥쳐보니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2018년 방송인데 7년이 지난 2025년 지금까지도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아니 더 심해졌다", "92년생인데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자기 계발, 트렌드 공부, 기술 습득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60세까지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다. 요즘은 대기업도 40대가 평균인 것 같다.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듯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