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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경제학 폐강 소식에 씁쓸 김수행의 뜻, 다시 날개 달았으면”
2015년 7월31일 김수행(1942~2015) 교수님이 자본론 마지막 개역판 원고를 탈고하시고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지 7일 만에 나는 전화를 한통 받았다. 교수님이 돌아가셨냐는 확인 전화였는데 나는 무슨 소리냐고 핀잔을 주곤 여기저기 확인을 하다 휴가 중 산에서 급서하셨다는 비보 한국장학재단 생활비대출 신청 를 접했다. 김수행이라는 거목이 이역만리 미국 땅, 유타의 산악지대 한복판에서 트레킹 중 쓰러져 2시간여 헬기 수색 끝에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미 절명하신 상태였다. 참으로 진퇴가 분명한 김수행다운 죽음이었다.
생전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셨던 자택의 서재를 정리하면서 그 부산하게 많던 메모와 공부의 흔적들과 여행 중 생긴 동전들 지급보증 과 서랍까지 말끔히 정리된 걸 보고 당신은 이미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영국과 미국에 거주하던 아들과 가족들을 불러 휴가를 즐기시고, 전날 밤까지 와인 수병을 남김없이 드신 후 다음 날 아침 일찍 가족들과 트레킹을 떠나 한시간 반 동안 선두에 앞장서 오르시다 ‘저곳에서 쉬자’며 앉으신 그 그늘에서 떠나셨다.
통혁당 사 학자금대출 국가장학금 건에 연루돼 끌려가 고초를 당할 때 대구 출신에 서울대까지 다니던 인재가 아깝다고 구제해주고자 여러 사람이 나서주었고 우여곡절 끝에 가난한 집 장남이었던 김수행은 외환은행 조사부에 취업하고 직장에서 반려의 인연까지 만나 결혼 후 영국지사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해외여행과 출국이 어렵던 시절 시국사건 연루 문제로 신원보증을 여러 차례 거치고 어렵게 사모님과 적금 이자율 아들 셋-첫아들과 쌍둥이 두 아들을 10개월 안에 얻으시고 항상 자랑삼으셨다-을 데리고 영국지사로 발령을 받아 나가게 된다.
런던 마르크스 묘비 앞에서 고인 가족들이 찍은 사진. 필자 제공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사 햇살론 신청 모님은 남편을 따라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덜컥 따라나선 영국지사 근무가 결국 가난한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아들 셋을 키우는 고난의 행군이 되리라곤 그때는 상상도 못 하셨다.
이후 김수행 교수님은 영국 서점에서 여러 판본의 자본론이 자유롭게 팔리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금서로 일본어 번역판의 자본론을 복사본으로 몰래 돌려 읽었는데 서점에서 자본론을 팔다니! 결국 구입한 자본론을 읽으면서 김수행 교수님은 은행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근무계약 연수를 못 채워 그 위약금을 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사모님은 회고하신다.
김수행 교수님은 가난한 집 장남으로 가계부양의 책무와 역할을 막중하게 생각하던 시절 대구상고 정구선수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발군의 실력으로 선수생활을 하다 먹고살 걱정에 공부로 전향한다고 했을 때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나왔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작한 공부 1년 만에 서울대 상대를 수석 입학했다. 농담처럼 말씀하시길 “내가 공부를 하는데 얼마를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많이 했어. 잉여이윤이 아니라 잉여공부로 수석까지 했지 뭐야.” 참으로 천재 김수행다운 농담이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가난과 시대의 엄혹함이 김수행이라는 거목을 만들고 한 시대의 바람과 그늘, 그리고 거름이 되게 했다.
런던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수행은 한신대 재직 중 학내분규로 해고된 뒤 서울대로 이직하게 된다. 이 무렵 마침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 임용을 요구하는 대학원생들의 시위와 농성이 있었다. 1989년 자본론 완역판이 비봉출판사에서 출판되면서 이미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마르크스경제학의 교과서 자본론과 김수행은 동시에 시대적 시민권을 얻었다. 마르크스경제학자 김수행은 1989년 서울대부터 성공회대 석좌 교수로 2015년까지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과 뿌리내린 학문으로서 마르크스경제학의 번성을 기대하셨다.
생전 마르크스경제학의 산실로 여겼던 서울대에서 2024년 2학기 이후 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이 ‘수요부족’을 이유로 모두 폐강됐다. 김수행의 제자인 강성윤 교수가 폐강에 반대하며 시민강의를 개설하고 수강생을 모집해 1500명 이상의 수강신청을 받았다. 학문의 다양성을 ‘수요’의 문제로 치환하는 학문의 전당은 없다.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으며 들려온 서울대의 폐강 소식은 매우 씁쓸하다. 선생님이 자본론 마지막 개역을 시작한 이유도 어려운 한자나 개념어들을 순화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과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해설집을 따로 출간하면서까지 자본론이 널리 읽히고 더 쉽게 이해되길 염원하셨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수차례 대중강의를 진행하고 농성장, 거리강연 등 기회가 되는 모든 곳에서 당신의 배움을 널리 전파하셨다.
영국 여행 중 고인과 아내. 필자 제공
고인과 성공회대 제자들. 필자 제공
“마르크스는 경천동지할 세상을 뒤엎을 이론을 만드느라 생애를 다 바쳤는데, 나는 그걸 가르치고 다니느라 생을 다 바쳐서 좀 그렇지만, 이게 내 일이야. 마르크스경제학을 왜 하느냐고 사람들이 자꾸 묻는데, 나는 그냥 마르크스가 옳다고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거야 그냥 하는 거야.”
처음 성공회대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 탈권위적인 직관적인 언어구사,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한말을 흔들림 없이 드시던 모습과 아침에 해장술, 산책 가서 산책 술, 저녁에 가족 제사 술자리까지 하루에 모두 해결되던 그 어마 무시한 체력과 지력을 생각하면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일대종사 그랜드마스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을 기리는 것은 그 뜻을 기리는 것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일생을 바쳐 마르크스경제학을 널리 알려 빈민과 노동자 민중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고자 했던 김수행의 뜻이 다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길 기대해본다.
이혜숙/성공회대 NGO대학원 정치경제학과 2기 수료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