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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층’이 집권 자민당 지지층보다 많은 대표적인 ‘회색 지대’입니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조사에서 무당파층이 23%, 자민당 지지율이 20%였어요. 그만큼 도쿄 유권자들만 참여하는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는 일본 정치권 향방을 결정할 가늠자로 평가됩니다. 유권자들의 정당을 떠난 표심(票心)을 가늠할 수 있죠.
지난 2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역대 최저 의석 수인 21석(전체 의석 127석)을 얻고 참패했습니다. 그대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이끄는 서울 월변 도민퍼스트회가 31석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국민민주당 관계자들이 지난 22일 도쿄도의원 선거 당선 확정자 이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아베마뉴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참패보다 더 눈길을 끈 소식은 신생 신한은행저축은행 보수정당들의 약진이었습니다. 중도보수 성향의 국민민주당이 9석을, 같은 보수 성향인 참정당이 3석을 얻어 창당 이래 처음으로 도쿄도의회에 진입했습니다. 특히 국민민주당은 직전 선거였던 2021년 입후보자 4명이 전원 낙선했던 아픔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입후보자 중 절반이 당선됐습니다.
국민민주당은 2020년 ‘옛 국민민주당’이 입헌 한국장학재단 중도상환 민주당으로 흡수·합당되는 것에 반발한 의원들이 독립해 나온 정당입니다. 원전 재가동에 찬성하고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안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보수 성향의 자민당과 궤를 같이하지만, 소비세 인하와 사회보험료 부담 경감 등 친(親)서민 정책을 강조한다는 점이 차별점입니다. 이런 유권자 입맛에 맞춘 공약들로 지난해 10월 중의원 총선에서부터 존재감을 700만원 대출 키웠습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중의원 총선 토론회에서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가 ‘젊은이를 망치지 마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로이터 뉴스1


국민민주당은 당시 중의원 선거에서 선거 전보다 네 농협대출상담사 배 뛴 28석을 차지했습니다. 당이 기대했던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를 넉넉히 지정해놓지 않아서 원래라면 31석이었을 것을 3석을 다른 당에 양보해야 했죠. 창당 이래 지지율이 매달 1% 안팎에 그쳤던 것과 대비됩니다.
참정당은 국민민주당과 같은 2020년 만들어진 신생 정당입니다. 국방비 증액, 평화헌법 개정, 외국인 이민자 배척 등을 앞세운 민족주의 성향이라고 평가됩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비례 의석 3석을 확보했습니다.



카미야 소헤이 일본 참정당 대표/마이니치신문 디지털


일본 전국민 표심을 엿볼 수 있는 도쿄 유권자들이 두 신생 정당에 표를 던진 건, 고물가·저임금으로 인한 시름 속 자민당 의원들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스캔들 등으로 ‘고인물 정치’에 피로를 느끼고 대안 정당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이번 도쿄도의원 선거는 내달 20일 예정된 참의원 의원 선거의 전초전 성격이 강합니다.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을 만든 지난해 중의원 총선에 이어 오는 참의원 총선에서도 집권당이 패하면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농림수산상의 ‘쌀값 급등 대응책’으로 간신히 서민들을 설득하려나 싶었던 자민당이 총선 전초전에서 보란 듯 완패한 겁니다.



지난해 11월 당수회담에서 만난 다마키 유이치로(왼쪽) 일본 국민민주당 대표와 이시바 시게루 총리/요미우리신문 디지털


이 가운데 요미우리신문은 “강판 위기에 처한 이시바 총리가 국민민주당 등 야당과의 연립 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도쿄도의원 선거 패배로 참의원 선거에서도 암운에 맞부딪힌 자민당이 현재 자민·공명당 체제의 연립여당을 확대해 위기를 넘기려 하고, 그 대상이 국민민주당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경우 자민당이 아닌 다른 연립 정당에서 새 총리가 배출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는 현 국민민주당 대표 다마키 유이치로 중의원 의원입니다.



2020년 9월 일본 국민민주당 창당 당시 단체사진. 아랫줄 왼쪽에서 셋째가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국민민주당


다마키는 국민민주당 창당 원년 멤버 15명 중 하나입니다. 평화헌법 개정 등 안보에선 보수, 동성혼과 부자 증세 등 사회·경제에선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등거리 정치인’입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국민민주당 돌풍의 아이콘입니다. 비결은 소셜미디어. 다마키의 팔로워는 현재 유튜브가 약 60만명, X가 74만명으로 웬만한 인플루언서에 맞먹습니다.
다른 정치인들도 소셜미디어를 쓰긴 마찬가지인데요. 다마키의 차별점은 ‘쌍방향 소통’입니다. 틈나면 라이브 방송을 틀고 본인 활동을 홍보합니다. 지지자들 댓글에도 실시간으로 답변하고요.



다마키 유이치로 일본 국민민주당 대표/마이니치신문 디지털


원래도 숨돌릴 틈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다마키 비서실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지난해 TV아사히 인터뷰에서 “(다마키는) ‘쉬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변 만류에도 휴대전화만 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이 급작스럽게 소셜미디어를 시작한 다른 기성 정치인들보다 억지스럽지 않게 유권자들에게 다가간 겁니다.
다만 다마키에게도 악재가 없진 않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현지 주간지 보도로 불륜 사실이 발각돼 석 달 동안의 대표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어요. 여기에다 최근 불륜 의혹이 있었던 야마오 시오리 전 중의원 의원을 오는 참의원 선거 후보로 공천했다가 여론 반발로 취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엔 이시바 내각이 쌀값 급등 파동 대응책으로 방출하고 있는 비축미를 “가축 사료”라고 힐난해 여론이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공개 사과도 했지만 한때 자민당에 견줄 수준인 20%에 육박했던 당 지지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졌어요.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와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마이니치신문 디지털


하지만 이런 위기에도 이번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다시 영향력을 입증한 것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까지 나서 최근 “(다마키를) 총리 후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다마키도 “가정적 상황엔 논평할 수 없다”면서도, 자민당과의 연립 가능성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립여당 체제에서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서 총리가 배출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전례가 있어요.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81대 총리(1994~1996년 재임)인데요. 그는 일본사회당(현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자사사(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당) 연립’ 시절 총리직에 앉았습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오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신승을 거둬도 사실 중의원에서의 여소야대 국면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에 흐름을 탄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채우고 그 보답으로 다마키에게 총리직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지 정치권은 당내 비주류였던 이시바가 오는 2027년 9월까지인 자민당 총재직을 재선으로 연장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시바도 이를 감안해 당의 성장을 위한 큰 그림을 위하여 총리 자리를 양보할 확률이 없지 않다는 관측입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현해탄 건너 당신이 궁금해 할 일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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